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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구 신암동에 살던 시절의 추억

2018년 10월 3일에 쓴 글: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 대구 동구 신암동의 명소는 단연 강남약국이었다. 동대구시장의 초입에 있던 그 약국 앞은 만남의 장소요 랠리포인트였다. 그 약국의 이름을 딴 버스정류장이 있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그 약국으로 가는 길에 작은 서점이 하나 있었다. 철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른 한 명이 걸을 수 있는 좁은 통로가 나 있고 양쪽으로 책이 가득 쌓여있었다. 서점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역시 K서점이었을까.

서점 입구에는 역시 잡지가 빼곡히 놓여 있었고, 안쪽으로 갈수록 책장은 점점 높아져 내 키를 훌쩍 넘는 높이에도 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그 동네에서 거의 유일한 서점이었다.

부모님 손을 잡고 서점에 들러 책 구경을 하고 딱 한 권의 책을 살 수 있었다. 주로 만화로 된 역사책이나 세계명작 따위를 골랐던 것 같다.

잠시 책 속에 파묻혀 있다 한 권을 골라내면 서점 주인아저씨가 크라프트지로 된 종이봉투에 그 책을 넣고 포장한 다음 다시 내게 건네주었다. 그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그리고는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식당에 가서 주로 돼지갈비를 먹었고, 흥이 넘치면 노래방까지 갔던 것 같다. 박진영의 데뷔곡, [날 떠나지마]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카세트테이프에 노래를 녹음해 와서 집에서도 몇 번 들었던 것 같다. 소박한 행복이었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한두 번으로 그쳤던 일은 아니고 특정 시기에 꽤 자주 그런 가족이벤트를 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주말에 일을 쉬시는 날이었을 것이다.

문득 그날들이 떠오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젊었고, 누나와 나는 어렸다. 지금도 서점에 가서 잔뜩 쌓인 책을 보면 설렌다. 어서 고르라고 재촉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여전히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