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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끝까지 최선을 다하시다

2020년 2월 16일에 쓴 글:

 

약 2달 전에 쓴 메모.

어머니. 점점 기력이 약해지시는 게 느껴졌다. 마음이 아팠다. 오늘은 울지 않았다. 어머니의 표정에서 어떤 결기 같은 것을 느꼈다. 내가 어머니의 상황이었다면 지금 어땠을까. 진즉 무너지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버티고 계셨다. (2019.12.08)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는 가만히 병상에 누워계시지만 그 가만히 계심이 계속 살아가겠다는 투쟁으로 보였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계신 듯 보였다. 어머니는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내가 마음을 약하게 먹어서 되겠는가. (2019.12.08)

 

그리고 오늘.

 

듣기만 해도 무서운 병명의 진단이 나왔을 때부터 ‘죽음’이라는 단어는 줄곧 어머니 곁을 맴돌았다. 차마 입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을 뿐이다. 아주 서서히 느려지고 나빠지는 잔인한 병. 몇 주마다 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눈에 띄게 안 좋아지고 있었다. 몸은 뼈만 남아 앙상해보였다.

 

병원 신세를 지기 시작하고 몇 년은 흐른 거 같았는데, 아직 5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나는 서울에서 살고 누나는 대구에 있지만 결혼해서 두 아이까지 있는 상황이라 아버지 혼자서 많은 일들을 감당하셔야 했다. 아버지도 지치셨다.

 

5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어머니를 뵐 때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대화는 아니고 나의 일방적인 이야기였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없을 기회인양 절실히 말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어머니가 힘겹게 한 문장을 던지시곤 했다: “서울 올라가는 차표는 잘 예매했지?”

 

나는 아직 어머니에 대해서 더 묻고 더 듣고 싶은데 이제는 그걸 할 수가 없다. 어머니도 할 말이 아주 많으실 거 같은데 아무 말도 하실 수가 없게 되었다. 그게 너무나 아쉽다. 나는 어머니에 관하여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야기가 없으면 정말로 정말로 모든 게 사라져버린다.

 

어머니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결국 미안해요, 감사해요, 사랑해요, 밖에 없었다. 아프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 죄송하고, 아프고 나서도 더 자주 찾아오지 못해 죄송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죄송했다.

 

사랑을 주셨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받은 사랑이 아마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리라. 무얼 한다고 해도 믿고 지지하고 응원해주셨다.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사랑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그 사랑에 감사했다.

 

어머니를 사랑한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 추억, 결코 잊지 않고 싶다. 병과 싸우는 어머니의 마지막 몇 년의 모습은 아들로서 지켜보기가 너무나 가슴 아팠지만, 이제는 좋았던 기억만 남기고 싶다. 어머니의 마지막이 외롭고 쓸쓸하고 무섭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들 모두가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