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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고향에 가기 위해 명절 때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했다

온 집안에 식용유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한다. 추석 전날이다.

나는 먹기 위해 사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굳이 편을 가르자면 살기 위해 먹는 쪽에 가깝다. 어차피 배를 채우고 허기를 달래는 거라면 그저 속 편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실천한다. 매끼니 같은 음식을 먹게 된다고 해도 크게 불만은 없다. 무던하게 잘 버틸 자신이 있다.

추석 날이다. 차례를 지내고 저녁에 처가에 왔다. 우연히 여기 동두천시 보산동에 ‘핫피자Hot Pizza’가 유명하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서울에서도 먹으러 올 정도라고 했다. 나는 이 피자를 먹고 까무러칠 정도로 맛있어서 죽기 전에 다시 이 피자를 꼭 먹고 싶다고 쓰고 이 글을 끝내고 싶었다.

배달은 안 되고 방문 포장만 되는 이 피자가게에 가서 15분 기다려서 피자 두 판을 포장해왔다. 갓 구운 피자라 정말 뜨겁긴(hot) 했다. 그러나 그냥 피자였다. 반죽 위에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토핑과 치즈를 듬뿍 올리긴 했지만, 그냥 피자였다. 이걸 죽기 전에 꼭 먹고 싶은 음식이라 말할 순 없다는 답답함에 낮부터 캔맥주를 두 캔이나 마셨다.

애초에 죽기 전에 무언가를 꼭 먹겠다는 마음가짐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불경하다는 삐딱한 생각을 해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무엇을 드셨던가. 아무 것도 드시지 못했다. 숨이 끊어져 가는 상황에 가족들의 귀에 대고 ‘촉촉하고 야들하게 삶아진 돼지고기 수육이 먹고 싶구나’ 하실 것도 아니었다.

낮에 맥주를 마신 탓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아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동부간선도로를 탔는데 도봉지하차도가 새로 뚫려 있었다. 혈중에 알콜이 남아있던 나는 조수석에 조신하게 앉아서는 “오, 여기 도로가 새로 생겼구나”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분명 그런 기억이 있다. 운전석에 앉은 아버지와 조수석에 앉은 어머니가 우리가 달리고 있는 길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걸 뒷자리에 앉은 내가 조용히 듣고 있었던 것이다. 주로 말하는 쪽은 운전을 전담했던 아버지였다. 그 길을 직접 운전해서 올 일이 없을 어머니는 참 재미있게도 듣고 계셨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아버지의 고향에 가기 위해 명절 때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했다. 아버지 삼형제가 모두 대구에 살고 있어서 명절 때만 되면 세 가족을 실은 승용차 3대가 함께 대구에서 출발해 88고속도로를 타고 광주로 향했던 것이다. 그 예전의 자동차 여행이란 정말 오래 걸리고 무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혼자 집에서 머물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아니었으니 차에 실어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렇게 뒷자리에서 카시트도 없이 앉았다가 누웠다가 뒹굴었다가 지루해 죽을 지경이 되면 운 좋게 조수석에 한 두 번 앉아볼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조수석에 나를 앉힌 어른들은 “조수석에 앉은 사람에게는 중요한 임무가 있다. 바로 운전자가 졸지 않도록 물도 주고 껌도 주고 라디오도 틀어주고 지도도 봐주고 말도 걸어주고 하는 것”이라고 일장연설을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조수석에 앉아서는 내가 먼저 졸아서는 절대 안 된다 다짐하며 가끔 운전자의 눈꺼풀을 확인하고 물 드릴까요 껌 드릴까요 라디오 틀어드릴까요 끝말잇기 하실가요 하며 재잘재잘 떠들어 댔던 것이다.

이 명절 자동차 여행은 고작 한 두 시간 걸리는 귀여운 여정이 결코 아니었다. 운이 나쁘면 장장 열 시간에 가깝게 이동하는 날도 있었다. 그러니 별별 기억이 다 있다. 차 세 대가 줄지어 경주하듯이 이동하기도 했고, 2차로에 나란히 서서 달리며 창문을 내리고 뭐라고 떠들기도 했고, 터널에 들어가면 밤이 되었다며 자는 척도 했다가 사정이 급하면 갓길에 주차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반가운 말은 “저기 휴게소에서 쉬었다 가자”였다. 여러 휴게소에 갔겠지만, 지리산휴게소는 그 지명과 건물의 배치까지 또렷이 기억이 난다. 높이 솟아있는 커다란 탑(‘88올림픽고속도로준공기념탑’)도 기억이 난다.

지리산휴게소에 도착하면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펴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우동 같은 걸 시켜 먹었다. 어느 휴게소에서나 맛 볼 수 있는 그 흔한 각기우동(가케우동かけうどん)이 특별히 맛있었는가 하면, 글쎄 나는 그게 너무 맛있어서 잊지 못할 맛이고 죽기 전에 꼭 먹고 싶다고 할 정도로 호들갑을 떨 맛은 아니었다.

우동 몇 그릇을 놓아두고 가족이 서로 마주 앉아 도로가 어떻네 날씨가 어떻게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리겠네 어느 구간은 국도로 빠져서 가는 게 낫겠네 어디 쯤에는 과속 단속 경찰이 있을 것이니 조심하는 게 좋겠네 하며 시시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아직 몇 시간을 더 가야했지만, 아무리 길어도 1시간을 넘기지 않았을 그 짧은 휴식이 참 달았다.

 

지리산휴게소 (출처: https://blog.naver.com/msturtle/222182336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