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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외숙모께 | 조카 민정의 편지

나의 사랑하는 외숙모께

외숙모에 대한 기억을 거슬러올라 갔어요.


90년대 어느 겨울 밤이었어요. 그때는 아파트에 살고 계셨고, 저는 엄마, 언니와 함께 외숙모 집에서 잠을 잤어요. 추울까봐 걱정되셔서 난방을 세게 해주셨는데, 어린 저는 못 견뎌하며 엄마와 외숙모에게 있는대로 짜증을 냈습니다. 외숙모께서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야야 민정아 많이 덥나, 외숙모가 문 열어줄게 이쪽으로 와라’ 말씀해주셨던 것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가 대구에 간다고 할 때에는 항상 외숙모 집에만 머물게 된 것이. 폐가 될 줄 알면서도 저는 제 마음이 더 중요했던가봐요. 다른 곳에서는 마음이 편치 않아 속병이 항상 났기 때문에 외숙모 댁에만 갔어요.


언젠가 한번은 저혼자 외숙모 댁에 오래 머물던 때가 있었는데,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에서 하교하고 돌아온 세희오빠가 배고파하자 묵은지를 물에 씻어, 밥이 얹어진 숟가락 위에 손수 손으로 찢어 올려주시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행복하게 웃고 계셨어요. 어린 눈에도 그 모습이 좋아보였는지 오래도록 기억이 납니다.


성인이 되어서 대구로 시험을 보러 갈 일이 많았어요. 또 저는 외숙모 댁으로 갔습니다. 수험생을 손님으로 받는다는 것이 다시 생각해도 마음의 부담이 되는 일인데 외숙모께서는 그 어떤 싫은 내색도 없으셨어요. 시험날 아침에 주셨던 따뜻한 밥과 국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알게되었어요. 외숙모께서 많이 편찮으시다는 것을. 회복의 여지가 거의 없는 병이라는 것도... 늦게 시작한 사회생활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살고자하는 몸부림으로 순간순간을 견뎌냈어요. 이것이 찾아 뵙고 눈을 마주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요. 수없이 베풂을 받고 찾아뵙지도 못한 나란 사람... 외삼촌과 언니, 오빠가 느끼는 슬픔에는 절대 미치지 못하겠지만 제 심장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차올랐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움과 수치심, 죄송함, 슬픔, 감사함...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 완전히 멀어져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늘 내 바로 오른쪽에 계시다고 생각해요. 언제든 부르면 들을 수 있고,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외숙모께서 지금 제 옆에 와 계시다면 있는힘껏 끌어안아드리고 싶습니다. 팔을 풀지 않고 언제까지고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다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외숙모님

2020년 2월 26일
민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