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아버지의 고향에 가기 위해 명절 때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했다 온 집안에 식용유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한다. 추석 전날이다. 나는 먹기 위해 사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굳이 편을 가르자면 살기 위해 먹는 쪽에 가깝다. 어차피 배를 채우고 허기를 달래는 거라면 그저 속 편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실천한다. 매끼니 같은 음식을 먹게 된다고 해도 크게 불만은 없다. 무던하게 잘 버틸 자신이 있다. 추석 날이다. 차례를 지내고 저녁에 처가에 왔다. 우연히 여기 동두천시 보산동에 ‘핫피자Hot Pizza’가 유명하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서울에서도 먹으러 올 정도라고 했다. 나는 이 피자를 먹고 까무러칠 정도로 맛있어서 죽기 전에 다시 이 피자를 꼭 먹고 싶다고 쓰고 이 글을 끝내고 싶었다. 배달은 안 되고 방문 포장만 되는 이 피자가게에 가서 15분 기.. 더보기 어머니의 손과 냄새와 환한 웃음이 그립다 어머니는 파킨슨병을 앓으셨다. 그저 갱년기 우울증을 심하게 겪는 정도인 줄 알았던 가족들은 어머니의 병명을 듣고는 놀랐다. 아마 가장 놀란 사람은 어머니 본인이었을 것이다. 병원에서는 치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다고 했다. 누구의 잘못도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의 죄책감이 함께 왔다. 이별의 순간은 내 예상보다 너무 일렀다. 자식으로서 제대로 모시지 못한 탓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면 그리움 같은 애틋한 감정보다는 슬프고 죄송한 마음이 먼저 든다. 어머니의 마지막은 어머니가 평생 아끼고 돌봤던 가족들에 둘러싸인 상태였다. '어머니의 마지막이 쓸쓸하고 외롭지는 않았.. 더보기 언제쯤 엄마 이야기를 하며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추모 블로그를 소재로 취재를 하고 싶다는 기자님을 만났다. 기사거리가 될까 싶었지만, 그건 내가 아니라 기자님이 알아서 잘 판단해주실 것으로 생각했다. 벌써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2년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어머니를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더는 울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그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눈물이 났다.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더보기 어머니 없이 맞는 어머니의 첫 생신 8월 초, 어머니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맞는 어머니의 생신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안 계시지만, 이날을 그냥 보내기는 아쉬워서 가족들이 모였어요. 코로나19로 조심스러웠지만 대구 가족이 한 차로 서울까지 올라왔습니다. 어린 조카들이 밥만 먹고 그냥 돌아가는 게 아쉬워서 수족관 관람을 했어요. 점심 때는 아내가 대구 가족을 집으로 모셔서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저녁은 중식당에서 모두 모여 먹었고 어머니 생신과 곧 있을 아버지 생신을 축하했어요. 어머니가 정말 많이 보고 싶었고,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고 싶은 날이었어요. 어머니. 하늘에서 다 보고 계셨죠? 어머니 안 계시지만 저희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아버지 걱정은 너무 많이 하지 마셔요. 잘 지내고 계십니다. 누나와 제가 더 자주 챙길게요. 어머니가 항상 함.. 더보기 어머니가 떠나시고, 49일이 지났어요 따로 49제를 하진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모여 어머니 계신 곳을 찾았어요.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던 때라 모든 게 조심스러웠어요. 어머니가 계신 덕안사 추모공원엔 벚꽃이 폈습니다. 어머니는 가셨지만, 어머니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남았습니다. 포근한 날씨를 함께 만끽하고 화사한 봄꽃을 함께 구경했습니다. 어머니, 보고 계시죠? 저희 잘 지내고 있어요. 아버지도 마음은 힘드시겠지만, 잘 이겨내고 계세요. 항상 어머니가 함께 계신다는 걸 느끼고 또 확인하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더보기 어머니와 아버지의 연애시절 사진 아마도 1980년대 초반. 어머니도 아버지고 젊고 귀여우셨다. 그런데 대구 근처에 저렇게 동굴 속까지 들어갈 수 있는 관광 명소가 있었던가. 더보기 대구 동구 신암동에 살던 시절의 추억 2018년 10월 3일에 쓴 글: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 대구 동구 신암동의 명소는 단연 강남약국이었다. 동대구시장의 초입에 있던 그 약국 앞은 만남의 장소요 랠리포인트였다. 그 약국의 이름을 딴 버스정류장이 있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그 약국으로 가는 길에 작은 서점이 하나 있었다. 철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른 한 명이 걸을 수 있는 좁은 통로가 나 있고 양쪽으로 책이 가득 쌓여있었다. 서점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역시 K서점이었을까. 서점 입구에는 역시 잡지가 빼곡히 놓여 있었고, 안쪽으로 갈수록 책장은 점점 높아져 내 키를 훌쩍 넘는 높이에도 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그 동네에서 거의 유일한 서점이었다. 부모님 손을 잡고 서점에 들러 책 구경을 하고 딱 한 권의 책을 살 수 있었다. 주로.. 더보기 나의 사랑하는 외숙모께 | 조카 민정의 편지 나의 사랑하는 외숙모께 외숙모에 대한 기억을 거슬러올라 갔어요. 90년대 어느 겨울 밤이었어요. 그때는 아파트에 살고 계셨고, 저는 엄마, 언니와 함께 외숙모 집에서 잠을 잤어요. 추울까봐 걱정되셔서 난방을 세게 해주셨는데, 어린 저는 못 견뎌하며 엄마와 외숙모에게 있는대로 짜증을 냈습니다. 외숙모께서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야야 민정아 많이 덥나, 외숙모가 문 열어줄게 이쪽으로 와라’ 말씀해주셨던 것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가 대구에 간다고 할 때에는 항상 외숙모 집에만 머물게 된 것이. 폐가 될 줄 알면서도 저는 제 마음이 더 중요했던가봐요. 다른 곳에서는 마음이 편치 않아 속병이 항상 났기 때문에 외숙모 댁에만 갔어요. 언젠가 한번은 저혼자 외숙모 댁에 오래 머물던 때가.. 더보기 이전 1 2 3 다음